경기도의 금강산 – 용문산

“용문사? 그 큰 은행나무 있는 데?”

경기도의 금강산 - 용문산

굳이 가보지는 않았더라도 용문사에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다는 건 다들 알고 있는 듯했다. 이런 유명세는 ‘용문사 국민관광단지’라는 표지를 보고 길을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길 양쪽으로 죽 늘어선 은행나무들에서 먼저 낌새를 느낄 수 있다. 원래 뭐 하나가 유명해지면 이런 저런 아류들이 무수히 쏟아지지 않던가. 찾는 이가 많은 절 입구가 대개 그렇듯이 용문산 용문사(龍門寺)도 속세의 때를 타고 있었다. 매표소를 지나자마자 산사(山寺)에 어울리지 않게 놀이동산이 떡 하니 자리잡고 앉아서 온갖 유행가들로 고성방가를 일삼고 있으니 말이다.

 아무리 세월이 변하고 세태가 변했다고 하지만 면벽수도해야 할 스님들의 도량 바로 턱 밑에 이런 ‘놀이’ 시설이 있다는 건 좀 기가 찬 일이 아닐 수 없다. 중생 구제의 그야말로 ‘대승적(大乘的)’ 아량인 걸까.

놀이동산을 지나면 바로 ‘용문사’라는 이름의 유래를 알려주는 일주문이 서 있다. 기둥을 휘감고 기세 좋게 올라가는 용이 새겨진 ‘용문(龍門)’이 사바세계와 정토(淨土)를 가르고 있는 듯 밖과 안의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울창한 나무 때문이겠지만 어둡고 서늘한 기운이 신령함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일주문에서 절 본체까지 길을 따라 서 있는 금강경, 법구경의 구절들을 읽으면서 걷다보면 굳이 불자(佛子)가 아니더라도 마음이 정갈해짐을 느낄 수 있다.

경기도의 금강산 - 용문산경기도의 금강산 - 용문산

단풍철, 용문사 일대는 제철이다. 눈 부시게 노란 은행나무들과 지천인 은행 열매, 그리고 예로부터 ‘서울 사대부 집마다 용문산의 산나물을 자랑 삼아 먹는다’고 할 만큼 명성을 얻고 있는 산나물. 이 정도만으로도 가을 타는 중생들이 찾아볼 만한 이유로는 충분할 것이다.

예로부터 경기의 금강산으로 불려온 용문산은 정상에서 뻗어내린 수많은 암릉과 암릉 사이에 자리잡은 아름다운 계곡들로 뛰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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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산은 특히 가을의 단풍이 볼 만한 서울근교의 명산이다. 남한강과 홍천강으로 둘러 싸여 있는 용문산 주변에는 유명산을 비롯하여 중원산, 도일봉 등이 산세를 더 하므로, 그 웅장함과 산수의 조화로움이 아기자기한 묘미를 더해준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험난한 바위산 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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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당일산행이 가능한 용문산은 교통이 좋다는 이점이 있다. 청량리에서 열차를 이용 용문역에서 내려 산행할 수 있는 철도산행지 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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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산 정상은 이전에는 출입금지 지역이었으나 지금은 정상의 신선 바위까지 오를 수 있다. 정상은 시야가 확 트이며 용문들녁, 유명산, 중원산, 도일봉 등의 높고 낮은 산자락이 시야에 펼쳐진다. 하산은 올라온 길로 되돌아 내려온다.

용문산 남동쪽 기슭에는 거찰 용문사가 자리하고 있고 일대는 국민관광단지로 지정되어 각종 편의시설이 조성되어있다. 용문사는 신라 선덕왕 2년(913년)에 창건되었다는 유서깊은 고찰, 경내에는보물 제531호 부도 등 문화재가 여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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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천연기념물 30호로 유명한 용문사 경내에 있는 이 은행나무는 둘레 10m,높이 70m로 동양 최대를 자랑한다.

풍물시장을 방불케 하는 용문산 입구에 있는 시장에서 봄에는 산에서 캔 산나물과 버섯, 가을에는 산 과일과 도토리묵 등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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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최대의 은행나무

유명한 그 은행나무는 용문사 바로 앞에 절을 지키는 사천왕처럼 우람하게 서 있다. 안내문에는 천연기념물 30호로 지정된 나이가 1천 100년이 넘은 나무라는 말과 함께, 높이가 41미터, 줄기 둘레가 11미터로 동양 최대라고 돼 있는데, 높이 60미터, 둘레가 14미터로 나와 있는 자료도 더러 있는 걸 보면 안내판이 세워진 이후에 그만큼 자란 게 아닌가 싶다. 어쨌든 이름값에 어울리게 대단한 연륜과 풍채를 지니고 있는데, 천년의 사랑을 소재로 한 영화 ‘은행나무 침대’에도 출연했다고 한다.

이 나무는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세자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던 도중에 심은 것이라는 설과,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뿌리를 내려 자란 것이라는 설이 전해진다. 오랜 세월 잦은 전란에도 불타지 않고 살아남은 나무라 ‘천왕목(天王木)’이라고도 불렸고, 조선 세종 때에는 정 3품의 벼슬인 당상직첩(堂上職牒)을 하사받기도 했다.

이렇게 범상치 않은 나무인지라 얽힌 전설도 많다. 어떤 사람이 이 나무를 자르려고 톱을 댔더니 그 자리에서 피가 쏟아지고 하늘에서 천둥이 일었다고 하며, 고종이 승하했을 때는 커다란 가지가 한 개 부러졌고 8.15해방과 한국전쟁 등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 이상한 소리를 냈다고도 한다. 무엇이든 오랜 세월을 견디어 살아남으면 영물이 되는가 보다.

용문사는 신라 진덕여왕 3년인 649년에 원효가 창건했다고도 하고, 913년 신덕왕 때에 대경대사가 세웠다고도 한다. 경순왕이 직접 창건했다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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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은행나무가 커보이지만 사실 더 큰 은행나무가 뒤에 숨어 있다는 사실…

아래 사진을 보면 위에 찍은 은행나무가 귀엽게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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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보물 정지국사 사리탑

숭불정책을 썼던 고려 시대는 물론이고, 조선 초기까지 상당히 번성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조선 태조 시절에 크게 보수공사를 했고, 세종조에는 수양대군이 어머니 소헌왕후 심씨를 위해 법당을 짓고 불상 2구와 보살상 8구를 봉안하는 등 왕실의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예전 건물들은 1907년 의병 봉기 때와 한국전쟁 등으로 불타 없어지고 현재의 모습은 1958년에 재건된 것으로, 문화재로서의 가치는 떨어진다.

용문사에는 은행나무 외에 또 하나의 보물이 있다. 보물 제 531호인 정지국사(正智國師) 부도(浮屠)와 비(碑)다. 태조 7년인 1398년에 만들어졌는데, 600여 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 비문은 조선초 유명한 학자이자 문신이었던 권근(權近)이 지었다.

비문에 의하면 정지국사는 고려 말 무학대사, 나옹화상 등과 함께 중국에서 공부했던 인물로, 법력은 높았으나 자취를 숨기고 홀로 수도에만 전념해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 천마산 적멸암에서 입적했는데, 다비식을 치른 후 사리를 거두지 않자 제자의 꿈에 나타나 분부를 내렸고, 이에 사리를 수습하여 당시 개축 중이던 용문사 경내로 옮겨 사리 탑인 부도를 세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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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원의 하나인 용문산 상원사
용문사에서 은행나무 보고 감탄 한번 하고, 절 경내를 돌아보고, 정지국사 부도까지 찾아보고도 좀 서운하다면 산길로 3~4킬로미터 떨어진 상원사를 다녀가도 좋을 것이다. 상원사는 용문사와 함께 조계종 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末寺). 오대산, 치악산, 묘향산에 있는 상원사와 함께 ‘사상원(四上院)’에 속하기도 한다.

상원사를 소개한 안내문을 보면 용문산을 예전에는 ‘미지산(彌智山)’이라 했다고 한다. 불교에서 세계의 중심에는 ‘수미산(須彌山)’이 있다는데, 미지산이면 그 인근 어디쯤이라 생각하고 부른 이름이 아닐까.

신라 시대에 세워진 상원사도 태종의 둘째 아들인 효령대군이 자주 찾았던 곳이면서 세조가 이 절에서 백의관음(白衣觀音)의 모습을 직접 보고 절을 크게 개수했다는 내력이 있을 만큼 꽤 번성했던 사찰이지만, 역시 과거의 모습은 다 소실되고 작은 암자 정도의 규모로 근대에 재건되었다.

현재 상원사 한편에 스님들의 공부방을 짓는 공사가 한창인데, 이 절 만큼은 관광 사찰이 아닌 수도하는 도량으로 지키겠다는 주지(住持)의 뜻이 남다르다. 관광객들로 복잡해진 용문사를 의식한 때문이리라.

세상과 사람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조용한 암자는 비단 수도승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 낯 간지러운 일상을 초연하게 바라볼 수 있는 내면의 안식처는 누구나 바라는 것일 테니까. 용문사는 속세를 멀리하지 않는 절이다. 산책 거리에 있는 위치가 그렇고 유명한 것도 사찰의 역사적 가치나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 법력 높은 고승이 아니라 키 큰 은행나무 한 그루다. 그래서 용문사에는 유치원 꼬맹이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이 찾아오고, 또 누구나 친근하게 느끼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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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직행버스>
ㅇ상봉터미널-용문사 (하루 4회 운행하며 1시간 40분 소요)
ㅇ상봉터미널-용문(하루 26회 운행하며 1시간 10분 소요)
ㅇ상봉터미널-양평 (하루 26회 운행하며 2시간 30분 소요) 

<기차>
ㅇ무궁화호(청량리-용문)하루 3회 운행하며 50분 소요
ㅇ통일호(청량리-양평)하루 3회 운행하며 50분 소요
ㅇ비둘기호(청량리-양평)하루 3회 운행하며 1시간 15분 소요

 

[현지교통]
ㅇ용문-용문사 (하루 15회 운행하며 20분 소요)
ㅇ양평-용문사(하루 4회 운행하며 40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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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안내]
서울 망우리고개 → 6번 국도 → 양평 → 용문터널 지나 구 국도로 진출 → 용문 → 용문교에서 331번 지방도로 → 6.5km → 용문사 계곡

은평뉴타운 관련 대시민 발표문

은평 뉴타운관련대시민 발표문

2006. 9. 25
서 울 특 별 시

■ 배경 및 이유
서울시는 지난 9월 14일, 강남·북 균형발전차원에서 낙후된 강북지역의 주거환경개선을 위하여 그 동안 시행해온 뉴타운사업의 시범지역인 은평뉴타운에 대해 금년 9월말 주택공급을 목표로 1지구에 대한 공급물량 및 분양예정가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 발표 이후 분양예정가가 높고, 이로 인해 주변 주택가격의 인상을 부추긴다는 비판여론과 함께 언론과 시민단체로부터 책정된 분양예정원가에 대한 세부내역 공개를 요구 받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우리시는 SH공사가 발표한 은평뉴타운 분양과 관련한 제반자료들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다음과 같이 결정하였습니다.

■ 발표 내용
1. 서울시 건설, 공공 APT에 대한 전면『후분양제』를 정부계획보다 대폭 앞당겨 도입

서울시는 금번 SH공사가 발표한 은평뉴타운 1지구에 대한 분양계획과 예정가격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하는 한편, 은평뉴타운을 포함, 서울시가 건설·공급하는 모든 APT에 대해 건설 공정이 80%이상 진행된 이후에분양하는 『APT 후분양제』를 전면 도입키로 하였습니다.

이는 금번에 발표된 은평뉴타운 분양예정가격이 사전분양에 따른 금융비용은 물론, 대지조성비·주변 부대시설 건설비 등의 투입비용이 추정치로 산정되고, 조성된 용지의 공급가액 또한 예정매매가격을 기초로 작성되어 부정확한 점이 있는데다 이러한 기초 자료를 토대로 한 세부내역은 공개된다 하더라도 추정치에 따른 논란을 잠재울 수는 없을 것으로 판단합니다.

따라서 최소한 APT 건설공정이 80% 이상을 넘어선 시점에서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산정된, 실제투입비용을 토대로 분양가격을 결정함으로써 사전분양에 따른 추정 분양가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확정된 투입 비용을 토대로 가격을 책정하여 APT 분양가격의 객관성과 검증가능성을 높이겠다는 의지입니다.

우리시는 이와 같이 후분양제도를 대폭 앞당겨 금년 은평뉴타운부터 80%이상 공정이 진행된 시점에서 분양함으로써 공공부문의 후분양제도를 앞당겨 정착시키고 이 제도가 민간부문에 까지 조기 확산될 수 있도록 견인차역할을 해나가기로 하였습니다.

2. 향후 서울시가 공급하는 모든 공공 APT의 분양가격산정시, 전문가 등 시민이 참가하는 「분양가심의위원회」의 공개 검증을 거쳐 결정

APT 건설 공정이 80% 이상 진행된 시점에서도 일부 비용에 대해서는 추정치 반영이 불가피하므로 기 투입된 건축비용과 발생 금융비용, 기타 토지공급비용 등, APT공급원가에 대해서는 전문가 등 시민이 참여하는 『APT분양가심의위원회(가칭)』의 객관적인 검증을 거쳐 분양가격을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러한 분양원가 공개검증은 향후 서울시가 공급하게 될 모든 APT에 대해 동일하게 적용할 것이며 분양원가를 구성하는 각 항목에 대하여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검증을 실시함으로써 APT분양원가 세부내역에 대한 궁금증과 의혹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3. 임대주택 건설 · 관리 등 공익적 용도를 위한 적정규모의 재원확보 및 수익금의 투명한 사용 및 관리

SH공사를 통해 시행되는 은평뉴타운을 비롯, 향후 진행될 뉴타운사업과 발산, 내곡, 장지지구 등 공공택지개발 및 주택건설사업은 공익적 목적을 위한 사업시행과 공기업 설립의 기본 취지에 맞추어 이윤을 적정규모 이내로 최소화하는 한편, 발생한 이익금 또한, 공기업의 일반사업 수익과는 별도계정으로 구분, 관리하여 택지개발사업으로 인한 수익금은 서민임대주택의 건설이나 관리 등의 재원으로만 사용함으로써 저소득 시민의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건설 사업에 전액 재활용하는 순환투자재원으로 활용함은 물론, 수익금의 투명한 관리와 사용을 제도적으로 보완해 나가겠습니다.

4.『APT 후분양제』조기 정착 및 확산을 위해 노력

투명하고 객관적인 공공 APT 공급가격 책정을 위한 APT 후분양제, APT분양가심의위원회 구성·운영 등의 제도 도입은 SH공사가 직접 공급하는 APT는 물론, 이후 서울시가 조성하여 매각한 택지를 분양받아 시공하는 민간건설 APT의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시스템을 보완 해 나가겠습니다.

아울러, 민간조합방식으로 시행되는 뉴타운사업에 대해서도 적용이 가능하도록 중앙정부에 관련 법령개정과 제도개선을 건의하겠습니다.

5. 입찰제도개선, 분양가 상한제 도입, 기타 원가절감을 위한 장기적 제도 개선 추진

우리시는 금번 은평뉴타운의 경우를 공공APT공급과정 전반에 대해서 점검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장기적으로는, 현재의 턴키방식이나 대안 입찰제도등의 입찰 방식에 대한 제도 개선과 함께, 분양가 상한제 도입, 대기업의 일정부분 의무 시공제 도입, 기타 시공과정에서의 원가 절감 방안 등을 연구검토하기위한 TASK FORCE를 즉각 구성 운영토록 하겠습니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법령 개정이나 제도개선, 업무과정전반에 대한 시스템을 정비함으로써, 향후 적정 분양가 책정을 통한 주택가격의 안정과 주택시장의 투명성을 높여나갈 수 있는 계기로 삼고자 합니다.

■ 시민여러분께 드리는 말씀
금번 은평뉴타운 분양원가 책정과 관련하여 시민여러분께 여러 가지 불편과 심려를 끼쳐 드린데 대해서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시민여러분께서는 우리시의 이러한 개선 노력을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담당부서 : 서울특별시 SH공사 분양팀(☎3410-7494)

은평뉴타운 용적률↑ 분양가↓

10%P 높아질 땐 평당 40만~50만원 줄듯

고분양가 논란을 빚었던 은평뉴타운의 평균 용적률이 높아진다.

이종상 서울시 균형발전추진본부장은 지난 17일 서울시의회 도시관리위원회 행정사무감사에서 “은평뉴타운 분양가를 낮추기 위해 평균 용적률 상향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것으로 19일 알려졌다.

서울 도심 아파트의 용적률은 대부분 220%대이지만 은평뉴타운의 평균 용적률은 153%로 여유가 있는 편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용적률 상향폭을 10%포인트 이상으로 올리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희수 서울시 뉴타운사업단장은 “구체적 상향폭은 국방부, 환경부 등 관계기관과 협의해 결정할 것”이라며 “그러나 단지 쾌적성 등을 감안할 때 용적률을 10%포인트 이상 높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은평뉴타운의 용적률이 10%포인트 높아지면 공급가구수가 500~1000가구 정도 늘어나 분양가는 평당 40만~50만원 정도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공사를 시작한 은평뉴타운 1·2지구의 경우 조정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

시는 또 분양가 인하를 위해 도로 등 광역교통시설과 상업시설에 대한 설치비용을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할 방침이다.

지난 9월 발표한 은평뉴타운의 평당 분양가는 최고 1523만원에 달해 서울시는 주변 주택가격 상승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았었다.

용적률이 높아지면 쾌적하고 환경친화적인 도시를 표방한 은평뉴타운의 주거환경이 악화될 수 있다는 비판과 분양 일정이 지연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이 본부장은 “건물 층고만 높이고 녹지 등 다른 기반시설은 당초 계획대로 조성할 계획”이라며 “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 등 행정절차를 다시 밟아야 하기 때문에 내년 9월로 예정된 분양일정은 다소 늦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시베리아에서 UFO 발견

시베리아에서 UFO 발견

러시아 과학자들이 약 100년전 시베리아에서 발생한 이유불명의 폭발이 있었던 장소에서 외계의 것으로 보이는 장치의 잔해를 발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AFP 통신이 모스크바발로 보도했다.

퉁구스카 우주현상 재단 소속 과학자들은 1908년 시베리아 퉁구스카 강 근처에서 발생한 거대한 충돌사고 장소에서 지구의 것이 아닌 장치의 잔해를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과학자들은 또한 50Kg 무게의 돌도 발견했고 분석을 위해 시베리아의 끄라스노야르스크시로 보냈다고 말했다.

이들이 잔해를 발견했다는 장소는 지난 1908년 거대한 폭발사고가 발생했던 곳이다. 이곳 시베리아의 황무지에서 있었던 퉁구스카 폭발사건은 20세기 사상 가장 큰 과학적 미스테리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폭발은 약 100년 전인 1908년 6월 30일 발생했으며 현재까지 이 폭발의 원인은 유성의 충돌로 믿어지고 있다. 당시 이 폭발은 퉁구스카 강에서 수 백 킬로미터가 떨어진 곳에서도 충돌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위력적이었으며 시베리아 숲 2000평방 킬로미터를 황폐화 시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 폭발을 일으킨 정확한 자연적 실체나 원인은 미스테리로 남아 있어 그동안 수많은 가설들과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고 AFP는 전했다.

라엘, 단 하루만에 미륵으로 성불!

1975년 6월경, 마이트레야 라엘은 프랑스 페리고르의 한 한적한 농장에 이주해 있었는데, 7월 31일 집 바로 위 500여 미터 상공에서 거대한 UFO를 목격한다. 그 다음 날 그의 팔에는 직경 3cm, 두께 5mm의 붉은색 3개의 작은 원(불교의 삼보마크)이 그려졌다. 15일이 지나자 이 작은 원들은 하나의 동심원으로 변했다. [그림 참조]

붓다의 설법을 전하는 경전인 [증일아함경] 제44권-48십불선품-11~12장(산스크리트어 : Ekothar Agama), (팔리어 Anguttara Nikaya)에는 미륵의 출현과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예언되어 있다.

[증일아함경] 제44권-48십불선품-11~12장

雞頭城不遠有道樹名曰龍華高一由旬廣五百步時弥勒菩薩坐波樹下成无上道果當
계두성불원유도수명왈용화고일유순광오백보시미륵보살좌파수하성무상도과당
其夜半弥勒出家卽其夜成无上道
기야반미륵출가즉기야성무상도

미륵보살은 얼마동안 집에서 지내다가 곧 출가하여 도를 배울 것이다. 그 때 계두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용화라는 도수(길가의 수목)가 있을 것이고 높이는 1유순이요, 넓이는 5백보다. 미륵보살은 그 초목 밑에 앉아 도를 이루는데, “그 날 밤에 집을 떠나 그 날 밤으로 미륵이 될 것이다” 이 때 삼천대천세계는 여섯 번 진동하고 이렇게 외칠 것이다.

梵天弥勒今已成佛道
범천미륵금이성불도
“지금 미륵께서 성불하셨다.”

“그 날 밤에 집을 떠나 그 날 밤으로 미륵이 될 것이다.” 즉, 붓다는 많은 고행과 수행을 한 후에 부처가 되었지만 미래불인 미륵은 단 하루 만에 부처가 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우주인의 메시지 제2권-2장(낙원에서의 즐거움, 새로운 율법)에는 붓다의 예언 내용이 그대로 적용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1975년 10월 7일 밤 자정, 라엘은 로그프라의 한 외진 숲속에서 2년 전에 만났던 우주인 엘로힘을 만나 그들의 행성에 초대된다. 엘로힘은 라엘에게 행성에서의 삶을 체험하게 한 후, 그를 그들의 “지구대사 이자 최후의 예언자”로 지명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신은 우리들의 대변자인 고대예언자들이 만든 모든 종교에서 그 도래를 예고한 바로 그 사람입니다.”

라엘은 불경에 예고된 미륵으로서 24시간의 행성체험을 마친 후, 다음 날 자정 로그프라로 다시 돌아왔다.

미륵의 탄생과정이 “단 하루만”에 이루어질 것이라는 붓다의 예언이 마침내 실현된 것이다. <@R>
[우주인의 메시지 관련항목]

1. 우주인의 메시지 p196~200(1975년 7월 31일의 목격)
그는 페리고르의 외딴 곳에 농장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아무도 살고 있지 않으므로 내가 좋다면 한두 달, 또는 원한다면 한동안 살아도 좋다고 했다. ~[중략]~ 우리들은 거대한 기체 하나가 집 바로 위를 소리 없이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 우리들로부터 불과 500미터 정도 되는 거리에서 지그재그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2. 우주인의 메시지 p239 (새로운 율법)
당신은 종교 중의 종교를 위한 예언자로서 신비를 벗기는 양치기 중의 양치입니다. 당신은 우리들의 대변자인 고대 예언자들이 만든 모든 종교에서 그 도래를 예고한 바로 그 사람입니다.

3. 우주인의 메시지 p201~p243 (두 번째 메시지)
1975년 10월 7일 밤 11시경 나는 갑자기 밖에 나가 하늘을 바라보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다. ~ 나는 자정이 가까워서야 그곳에 도착했다. ~[중략]~ 큰 우주선을 타고 지구 근처의 관측기지로 돌아왔다. 거기서 전날의 순서와 같이 옷을 입은 다음, 소형 우주선으로 출발했던 지점인 로그프라까지 왔다. 시계를 보니 자정이었다.

[참고자료]
우주인의 메시지1 : 우주인 엘로힘이 불교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무료 다운로드)
신수대장경, 고려대장경, 한글대장경
표준국어대사전 (*도수(道樹) 「명」길가의 수목, 『불』보리수

(엘로힘의 모든 메시지는 “우주인의 메시지” 등으로 출판되어 있으며 또한 http://www.rael.org
에서 e-Book을 무료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음)

日 에도 시대에 UFO 추락했다? ‘비행접시형 난파선’ 화제

일본 에도시대(1603~1867) 후반부에 그려진 고문서에 등장하는 ‘미확인 선박’ 그림이 해외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다.

최근 해외 블로그 사이트 등을 통해 소개된 후 화제를 낳고 있는 고문서는 현재 일본 이와세 분코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종류인데, 이 문서는 당시 일본 어부의 난파선 목격담을 근거로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서에 등장한 난파선은 이바라키현 해안에 밀려왔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비행접시를 닮은 독특한 디자인으로 인해 네티즌들의 큰 관심을 받고 있는 것.

3.3m 높이에 5.4m 길이의 크기인 비행접시형 난파선은 목재 및 크리스탈로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당시의 선박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선박의 모양을 두고 일부 네티즌들은 문제의 난파선이 일본 해안에 불시착한 ‘에도시대 UFO’라는 추측을 내놓고 있는 중.

日 에도 시대에 UFO 추락했다? ‘비행접시형 난파선’ 화제


또 난파선 내부에서는 정체 불명의 언어로 기록된 문서가 발견되었는데, 한자와 상형 문자를 섞어놓은 듯한 문자가 당시 일본은 물론 이웃 국가에서도 통용되는 언어가 아니라는 것이 기록을 본 네티즌들의 설명.

이밖에도 난파선에서 젊은 여성에 내렸는데, 창백한 얼굴에 붉은색 머리카락과 눈썹의 모습이 너무나 기괴했다는 것이 당시의 기록의 내용. 난파선에서 내린 여성은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구사했고, 그 누구도 자신에게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사진 : 에도시대에 작성된 비행접시형 난파선을 묘사한 기록 문서)

한-중, 간도 영유권 분쟁 미해결

중국 동북공정의 핵심 사안인 간도(間島) 영유권과 국경선을 둘러싼 한국과 중국의 분쟁이 아직도 ‘미해결 상태’라는 사실을 인정한 중국 학자의 논문이 중국의 권위 있는 국제전략연구기구 홈페이지에 올라 관심을 끌고 있다.

국제전략연구기구는 2002년 중국에서 설립된 첫 민간 국제전략 연구기관으로 권위 있는 논문과 평론만을 홈페이지에 올리고 있다.

이곳에 게재된 ‘중국-조선 국경선 쟁의의 발단(中朝邊界爭端)’이라는 논문은 “한국이 1992년 중국과 수교할 당시 백두산 천지와 옌볜(延邊) 지구의 귀속 문제를 제기했다”며 “중국과 한국 사이에 여전히 영토와 영해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논문은 저자의 이름 없이 ‘jiayi’로 등록돼 있다.

▽“정계비(定界碑) 잘못 세웠다?”=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1712년 중국 청나라 4대 황제 강희제(康熙帝)가 파견한 목극등(穆克登)은 무관 출신으로 변경 조사에 필요한 지식이 턱없이 모자라 압록강과 도문(圖們)강의 발원지를 찾지도 못했고 정계비를 세울 때도 완전히 조선 관원에 의존했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국경선이 청조에 불리하게 세워졌으며 백두산정계비에 쓰인 국경선 압록(鴨綠)-토문(土門)의 위치와 발원지를 둘러싼 논쟁으로 이어졌다고 이 논문은 지적했다.

또 조선과 청나라가 1883년부터 1888년까지 여러 차례 담판을 벌였지만 끝내 아무런 결과도 도출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한-중, 간도 영유권 분쟁 미해결


▽간도 영유권 문제 안 끝나=간도 문제는 청나라가 1664년부터 1886년까지 222년간 만주지역에 주변 민족의 입주를 금지하는 봉금(封禁)정책을 실시했지만 조선인들이 국경을 넘어와 개척 활동을 하면서 발생했다고 이 논문은 주장했다.

조선은 이후 간도를 자국 땅이라며 20세기 초엔 러시아와 옌볜을 공동으로 통치하기로 협약을 맺고 이범윤(李范允)을 간도 시찰사(視察使)로 파견했다는 것. 그러나 을사늑약(1905년) 이후 일본이 조선을 대신해 나서 1909년 9월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선으로 한 간도협약이 맺어졌다고 이 논문은 소개했다.

육낙현 간도되찾기운동본부 대표는 “수교 당시 한국이 간도 및 백두산 천지의 귀속 문제를 제기했다는 말은 처음 듣는다”며 “중국도 국경 문제가 미해결 상태임을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논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