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강점기 국어학계는 주시경파와 박승빈파로 나뉘는데 성향이 많이 달랐습니다.
주시경파 : 최대한 단어의 원 형태를 살린 형태주의 (높은 곳에서 바라보니 늙은 노파 둘이 앉아있네요)
박승빈파 : 최대한 현실적으로 소리나는 대로 적는 표음주의 (노픈 곳애서 바라보니 늘근 노파 두리 안자잇내요)
주시경파가 모인 조선어학회는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발표했는데, 형태주의를 원칙으로 했고 이를 위해 겹받침을 공식 추가하여 받침만 25자가 되었습니다.
박승빈파는 오히려 받침이 많아져 철자법이 복잡해졌고 현실 조선말과 괴리가 너무 크다고 이 안을 크게 비판했으나, 제대로 된 표준 철자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여긴 국어학계가 조선어학회의 통일안 지지를 표명하며 총독부의 표준철자법을 이기고 전국 표준으로 자리잡습니다.
 해방 후에도 남북한 모두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사용되고 있었으며, 남북의 국어정책을 공식 제정한 최현배와 김두봉 모두 주시경파였기 때문에 남북한은 맞춤법에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북한의 김두봉은 더 골수 형태주의자라서 조선어학회의 두음법칙은 인정하지 않았고, 이는 북한의 국어 규칙에 반영되었습니다. 또 의무교육으로 두음법칙 없는 글을 배우면서 오랜 시간 습관이 된 두음법칙이 북한 사람들의 입말에서도 사라집니다.
과거 ’있읍니다‘도 형태주의의 흔적이었는데,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다고 하여 ‘있습니다‘로 개정되었죠.
최현배(崔鉉培) 선생의 발자취국어학자 최현배(崔鉉培, 1890~1970) 선생은 일제강점기라는 어려운 시기에도 우리말과 한글의 주체성을 지키고 현대 국어학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입니다. 그의 주요 연구 업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국어 문법 체계의 확립: - 『우리말본』(1937) 저술: 최현배 선생의 가장 대표적인 업적으로, 서양 문법 이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우리말의 특성과 원리를 살린 독자적인 문법 체계를 정립했습니다. 특히 품사 분류, 문장 성분론 등에서 한국어의 특징을 고려한 이론을 제시하여 후대 국어 연구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 그는 국어 연구를 통해 '국어 주체성'과 '민족 주체성'을 확립하려 했으며, 그의 문법 연구는 이러한 사상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2. 한글 맞춤법 및 표준어 제정 참여: - 조선어학회(현 한글학회) 활동: 조선어학회 간사로 활동하며 『한글 맞춤법 통일안』(1933) 제정 과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는 현대 한글 표기의 근간이 되었으며, 우리말을 체계적으로 표기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 또한 『사정 한글 맞춤법 통일안』(1940)과 『조선말 표준어 사정』(1936) 작업에도 깊이 관여하여, 혼란스러웠던 한글 표기와 표준어 사용을 통일하고 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3. 우리말 순화 운동 및 한글 전용 주장: - 외래어 및 한자어 배척, 순우리말 사용 강조: 일제강점기 일본어 잔재와 무분별한 한자어 사용을 비판하고,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과학성을 강조하며 순우리말을 살려 쓸 것을 역설했습니다.
- 한글 전용 주장: 한글의 우수성과 과학성을 바탕으로 한자 없이 오직 한글만을 사용하자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국어 생활의 합리화를 꾀하고, 나아가 민족 주체성을 확립하는 중요한 운동이었습니다. 『한글갈』(1940) 등의 저서를 통해 한글 전용의 필요성과 한글의 우수성을 널리 알렸습니다.
4. 국어 교육의 중요성 강조 및 민족정신 함양: - 『한글의 투쟁』, 『나라 사랑의 길』 등 저술: 그는 국어 교육을 통해 민족의 얼을 깨우고 민족 주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우리말을 배우고 사랑하는 것이 곧 나라를 사랑하는 길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평생을 국어 독립과 발전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 교육자로서 후학 양성에도 힘써 많은 국어학자를 길러냈습니다.
최현배 선생의 업적은 단순한 언어학적 연구를 넘어, 일제강점기라는 민족 수난의 시기에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정신을 지키고, 해방 후 대한민국 국어의 기틀을 다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그는 '한글은 우리 민족의 얼'이라는 신념 아래 평생을 바친 진정한 국어학자이자 민족운동가였습니다. 김두봉(金枓奉) 선생의 발자취김두봉(金枓奉)은 독립운동가이자 북한의 정치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일제강점기 초기에 국어학 연구에 지대한 업적을 남긴 선구적인 학자이기도 합니다. 그의 주요 연구 업적은 민족어 수호와 근대 국어학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김두봉의 핵심적인 국어학 연구 업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조선말본』(朝鮮말본) 저술 (1916년): - 김두봉의 국어학 저술 중 가장 대표적이고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받습니다.
- 이 책은 한국어 문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최초의 종합적인 문법서 중 하나로, 당시 일본어 문법의 영향에서 벗어나 한국어 고유의 문법 체계를 확립하려는 노력이 담겨 있습니다.
- 명사, 동사, 형용사 등 품사 분류와 문장 구성 원리 등을 독자적인 시각으로 설명하여, 근대 국어 문법 연구의 중요한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 일제강점기라는 어려운 상황에서 민족어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보존하려는 학문적, 민족적 의지가 담긴 역작입니다.
2. 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 활동 참여: - 조선어연구회(朝鮮語硏究會)와 이후 조선어학회(조선어학회의 전신)의 주요 인물로 활동하며 한국어 연구와 보존에 앞장섰습니다.
- 우리말 사전 편찬, 한글 맞춤법 제정 등 조선어학회의 주요 사업에 깊이 관여하며 실질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3.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정에 기여 (1933년): - 조선어학회가 제정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의 주요 제정 위원 중 한 명으로서, 한글 맞춤법의 통일과 표준화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는 현대 한국어 표기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업적입니다. 그의 『조선말본』에서 제시된 문법적 견해들이 통일안 제정 과정에서 반영되기도 했습니다.
4. 민족어 수호 및 근대 국어학의 기틀 마련: - 일제강점기라는 어려운 시기에 한국어 연구를 통해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고 언어 주권을 확립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 그의 체계적인 문법 연구와 표준화 노력은 근대 국어학이 학문으로서 자리 잡고 발전하는 데 중요한 초석이 되었습니다.
요약하자면, 김두봉은 단순한 국어학자를 넘어 민족의 독립과 언어 수호를 위해 학문적 역량을 발휘한 선구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조선말본』과 조선어학회 활동은 한국어 연구사에 길이 남을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받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