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안아골타(完顔阿骨打, 1068년 ~ 1123년)는 금나라를 건국하고 여진족을 통일한 인물로, 그의 업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진족 통일: 오랫동안 요나라의 지배하에 흩어져 있던 여진 부족들을 규합하여 강력한 통일 세력을 구축했습니다. 그는 부족 간의 갈등을 조정하고, 공동의 목표를 제시하여 여진족의 단결을 이끌었습니다.
금나라 건국: 1115년, 요나라에 대한 반란을 일으켜 승리하고, 스스로 황제라 칭하며 금나라를 건국했습니다. 이는 여진족이 독립 국가를 세우고 동아시아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요나라 정복: 금나라를 건국한 후, 완안아골타는 적극적인 정복 전쟁을 펼쳐 요나라를 압박했습니다. 그는 뛰어난 군사적 능력과 전략을 바탕으로 요나라의 영토를 점령하며 금나라의 세력을 확장했습니다. 비록 그의 생전에 요나라를 완전히 멸망시키지는 못했지만, 요나라를 쇠퇴하게 만들고 멸망의 길로 이끈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정치 및 사회 제도 정비: 금나라 건국 후, 완안아골타는 국가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다양한 정치 및 사회 제도를 정비했습니다. 그는 여진족의 전통적인 문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법률과 관제를 마련하고,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데 힘썼습니다.
군사 제도 개혁: 뛰어난 기마술을 가진 여진족의 강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군사 제도를 개혁했습니다. 그는 군사 조직을 정비하고 훈련을 강화하여 금나라 군대의 전투력을 향상시켰습니다. 이는 금나라가 요나라를 정복하고 이후 북송을 압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따른 역사왜곡 시도
청나라와 아이신주어러: 청나라 마지막 황제 선통제의 성씨인 아이신주어러(愛新覺羅)에는 만주족의 역사가 담겨 있으며, 이는 금나라를 세운 아골타와 연결됩니다.
금나라 건국과 송나라 멸망: 아골타는 여진족을 이끌고 금나라를 건국하여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송나라의 수도 카이펑을 점령하는 등 한족에게 큰 치욕을 안겨주었습니다(정강지변).
완안올출 (김올출): 아골타의 아들 완안올출은 김올출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금나라 황족의 성씨가 '완안'이 아닌 '김'씨일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실제로 중국 감숙성에는 완안 씨 성을 가진 여진족들이 김올출을 자신들의 조상으로 여기며 살고 있습니다.
아골타와 신라/고려의 연관성: 박은식 선생은 아골타가 "우리 평양"이라고 주장했다고 하며, 중국 사서인 *금사*, *송막기문*, *흠정만주원류고* 등에는 금나라 시조가 신라 또는 고려에서 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특히, *흠정만주원류고*는 금나라의 국호가 신라 김씨에서 유래했다고 명시합니다.
김한보: 금나라 시조는 김한보라는 인물로, 신라 말 고려 초 혼란기에 한반도에서 만주로 이동한 세력의 일원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그는 여진족 사회에서 지도력을 발휘하며 기반을 다졌고, 그의 후손인 아골타가 금나라를 건국하게 됩니다.
고려와 여진의 관계: 아골타가 여진족의 지도자가 되기 직전, 고려는 윤관 장군을 보내 여진족을 정벌하고 동북 9성을 쌓았습니다. 이후 여진은 고려에 '부모의 나라'라 칭하며 동북 9성을 돌려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발해 유민과의 연대: 금나라는 건국 과정에서 발해 유민들의 적극적인 호응을 얻었습니다. 금나라의 고위 관료층과 왕비족 중에는 발해인이 많았으며, 금나라는 여진족과 발해인의 연합 정권 성격을 띠었습니다.
동북공정과 역사 왜곡: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만주의 역사를 중국사로 편입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고조선, 고구려, 발해, 금나라와의 관계를 왜곡하며, 민족 영웅 악비를 격하시키는 등 부작용을 낳고 있습니다. 아골타의 선조가 신라 후손이라는 사실은 동북공정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청나라 황실의 김씨 성: 청나라 황실의 후손 중에는 자신의 성을 김씨라고 밝히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금나라의 후예로서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