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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등축제 – 전세계 사람들이 모인 빛의 축제

2012년 11월 10일 늦은 오후… 청계천에 가족과 함께 나들이 차 방문했습니다.

볼거리가 많아서 그런지 방문하는 사람들도 상상을 초월하게 많았습니다.

청계천 등축제 - 전세계 사람들이 모인 빛의 축제

아래 모든 작품들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작품이 아니라 철사와 창호지로 만든 작품입니다.

청계천 등축제 - 전세계 사람들이 모인 빛의 축제 

강준휘 어린이… 우수에 젖은 표정으로 파인애플 작품 앞에 서 있네요.

청계천 등축제 - 전세계 사람들이 모인 빛의 축제 

청계천 등축제는 우리나라 옛날 민속축제를 작품으로 승화시킨 것입니다.

청계천 등축제 - 전세계 사람들이 모인 빛의 축제 

사람 하나 하나 소 한마리까지 예술적 혼이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청계천 등축제 - 전세계 사람들이 모인 빛의 축제

위의 물레방아를 밟고 있는 농민의 모습 또한 정말 리얼하게 만들었네요.

청계천 등축제 - 전세계 사람들이 모인 빛의 축제 

엿장수 아저씨에게 엿을 사러 가려는 꼬마… 또한 현장감이 느껴지네요.

청계천 등축제 - 전세계 사람들이 모인 빛의 축제

청계천 등축제는 작품을 보려는 사람들로 인해 걸음걸이가 보통의 축제와는 다르게 느립니다.

사람들이 작품을 보기만 하지 않고 찍으려하기 때문입니다.

청계천 등축제 - 전세계 사람들이 모인 빛의 축제

어제까지는 단순 등축제였지만, 오늘부터는 세계인이 함께하는 빛의 축제가 될거라고 하네요.

청계천 등축제 - 전세계 사람들이 모인 빛의 축제

저는 11월 중순으로 달려가는 터라,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추위가 느껴졌습니다.

청계천 등축제 - 전세계 사람들이 모인 빛의 축제

아래 연을 날리는 남녀노소의 작품 대단하지 않나요?

물론 와이어로 연을 하늘에 고정시켰지만, 멀리서 보면 어떻게 만들었을까? 가서 봐야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 정도입니다.

청계천 등축제 - 전세계 사람들이 모인 빛의 축제

아래는 씨름하는 사람들, 그리고 구경하는 사람들인데… 신윤복님의 작품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청계천 등축제 - 전세계 사람들이 모인 빛의 축제

아래는 결혼식하는 신랑, 신부의 모습입니다.

청계천 등축제 - 전세계 사람들이 모인 빛의 축제

아름다운 전시였지만, 우리 강준휘 어린이… 매우 힘들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청계천 등축제 - 전세계 사람들이 모인 빛의 축제

몇몇 사람들은 자신들의 소원을 조그만 등에 적어 청계천에 흘려 보냈습니다.

청계천 등축제 - 전세계 사람들이 모인 빛의 축제

이곳이 연날리기에 이어 두번째로 사람이 많았던 곳입니다.

바나나 같이 둥~ 떠 있는 저것은 바로 초승달입니다.

사람이 너무 많아 좋은 각도로 사진을 찍을 수 없었습니다.

청계천 등축제 - 전세계 사람들이 모인 빛의 축제

그리고 아래는 마패를 들고 서 있는 어사 박문수님…

청계천 등축제 - 전세계 사람들이 모인 빛의 축제

이런 저런 조형물을 다 보고 강준휘 어린이, 강재인 어린이… 다시 한번 회상 해 봅니다.

청계천 등축제 - 전세계 사람들이 모인 빛의 축제

강재인 어린이… 멋지게 포즈를 취해 주네요.

청계천 등축제 - 전세계 사람들이 모인 빛의 축제

강준휘 어린이, 강재인 어린이는 블럭에 그들의 마음을 듬뿍 담은 글을 썼습니다.

청계천 등축제 - 전세계 사람들이 모인 빛의 축제 

저 쌓인 블럭들은 등축제 기간 동안 사람들에게 전시가 되는 것들입니다.

청계천 등축제 - 전세계 사람들이 모인 빛의 축제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강준휘 어린이가 만든 블럭은 기념으로 집으로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청계천 등축제 - 전세계 사람들이 모인 빛의 축제

다른 분들의 소원은 위의 용으로 둔갑했습니다.

좀더 일찍 왔더라면 용으로 보여 줄 수 있었을 텐데요.

청계천 등축제 - 전세계 사람들이 모인 빛의 축제

위의 사진은 옛날의 한성을 미니어쳐로 만든 것입니다.

청계천 등축제 - 전세계 사람들이 모인 빛의 축제

시간되시는 분들… 청계천 등축제에 방문 해 보세요.

청계천 등축제 - 전세계 사람들이 모인 빛의 축제

아래 사진을 찍을 시점이 아마 밤 10시쯤 !?

강재인 어린이의 모습을 보면 추위가 어느 정도인지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청계천 등축제 - 전세계 사람들이 모인 빛의 축제

강재인 어린이의 회심의 미소… 마지막을 멋지게 장식했네요.

청계천 등축제 - 전세계 사람들이 모인 빛의 축제

북한산 온천 옆 흥국사 – 등산객들이 온천과 더불어 자주 찾는 코스

서울 은평뉴타운을 지나 북한산 가는 길에 흥국사라는 사찰이 있습니다.

이곳에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어서 주말마다 저희 집 식구들은 이곳을 찾고는 합니다.

겨울이 끝나가는 시점에 찾아서 그런지… 이곳은 싸늘하기만 한 것 같습니다.

북한산 온천 옆 흥국사 - 등산객들이 온천과 더불어 자주 찾는 코스

간간히 들려오는 목탁소리가 이곳이 사찰임을 다시 금 느끼게 해주는 것 같은데요.

이 사찰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보면 이곳이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임을 알게 되는데요, 그 역사 또한 대단합니다.

북한산 온천 옆 흥국사 - 등산객들이 온천과 더불어 자주 찾는 코스

신라 문무왕 원년인 661년에 북한산에 수행하다가 약사여래를 만난 곳에 흥성암이라는 절을 지은 것이 흥국사의 시초라고 합니다.

원효는 본전에 약사여래가 봉안하면서 상서로운 기운이 일어난 곳이라 많은 성인 배출이 될 것이라는 뜻에서 흥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북한산 온천 옆 흥국사 - 등산객들이 온천과 더불어 자주 찾는 코스

이 후 오랫동안 사찰의 연혁이 전해지지 않다가 조선 숙종 12년인 1686년에 중창하면서 다시 부흥하기 시작했다. 특히 영조가 생모인 숙빈 최씨의 묘인 소녕원에 다녀오던 길에 이 절에 들렀다가, 직접 지은 시를 편액으로 만들어 내리고 숙빈 최씨의 원찰로 삼으면서 영조와 정조 대에 크게 발전했다고합니다.
결정적으로 흥국사라는 이름은 영조가 하룻밤 머문 후 절 이름은 흥국사로 개칭되었으며, 절이 자리잡은 산도 원래 이름인 노고산에서 한미산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북한산 온천 옆 흥국사 - 등산객들이 온천과 더불어 자주 찾는 코스

위에서 설명했습니다만 이곳은 북한산성 입구 쪽에 위치해 있고, 한미산이 군사보호구역으로 출입이 통제되어 사람의 손길이 많이 닿지 않았다고 합니다.
본전인 약사전 안에는 약사여래상과 정조 16년에 제작된 약사후불탱화가 있는데, 칠성각과 극락구품도는 경기도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 가운데 극락구품도는 전체 그림을 아홉 개의 부분으로 나누어 극락을 묘사한 그림이라고 하니… 다시 가서 감상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첫 만남에서 악수를 통해 러블리한 마음을 전달하라

누구를 소개 받거나 자신을 소개할 때 가장 많이 하게 되는 악수.

악수 할 때는 상대방의 눈을 쳐다보면서 부드럽게 미소 띤 얼굴로 손을 가볍게 쥐는 것이 좋다. 여성이라고 지나치게 힘없이 손을 내밀거나 느슨하게 잡는 것은 무기력하거나 소심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으며 때로는 상대를 경멸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상대의 손을 가볍게 잡고 부드럽고 정겨운 인사말을 건네면 된다. 인종과 국적, 언어를 넘어 눈빛으로 주고받는 마음의 교감처럼 더욱 중요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악수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은 프랑스인, 이탈리아인, 스페인인 등 라틴계 사람들이라고 한다. 옛날 로마인들에게 손은 신뢰의 상징이었으며 악수하는 행위는 상대방을 신뢰한다는 표시였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다.

재미있는 건 프랑스에서는 남성과 여성, 초면과 구면에 상관없이 악수하기를 좋아하는 반면 영국에서는 초대면의 남성들 사이에, 그것도 회합의 장소에서만 제한적으로 악수를 한다는 것이다. 또 프랑스인들은 펌프질을 하듯이 거칠게 하며 이탈리아인은 악수하는 시간이 비교적 길다는 것도 흥미롭다.

김은선 – 다시 새긴 믿음

퇴근길, 지하철 역 입구 한 귀퉁이에 몸을 비스듬히 기댄 채 고통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청년을 보았다. 그냥 지나치려다가 그 청년의 모습이 너무 힘들어 보여 다가가 물었다.

“학생, 어디 아픈 데 있어요?”

“저…. 팔 한 쪽을 삔 것 같아요.”

청년은 고통스런 표정으로 한 쪽 팔을 움켜쥐고 있었다. 나는 얼른 병원엘 가지 왜 여기 있느냐고 물었다. 청년은 내 말을 듣고 잠시 머뭇거리다 딱한 사정을 털어놓았다. 지방에서 일자리를 얻기 위해 올라왔는데 일이 잘 되지 않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팔마저 다친 데다 붐비는 지하철에서 지갑마저 도난당했다고 했다.

나는 친구 말만 믿고 서울로 올라온 청년도 그렇지만, 시골 청년의 지갑마저 털어가는 서울 인심이 더욱 미웠다. 청년의 잔뜩 움츠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팠다. 무엇보다 그 청년에게 도움을 주어야겠다는 생각에 지갑을 열었다.

차비 하라며 1만 원을 주었다. 그러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밥도 굶었을것 같고 팔도 치료받아야 할 것 같아 3만 원을 더 꺼냈다. 청년은 몹시 죄송해하면서 연락처를 알려주면 내려가는 즉시 돈을 부치겠다고 말했다.

나는 돈보다도 청년의 자존심을 생각해서 전화번호를 일러주고, 조심해서 돌아가라고 당부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청년은 사흘이 지나도록 아무 연락이 없었다.

그 날 밤 나는 몹시 속이 상했다. 무엇보다 사람을 믿었던 내가 바보같았고 다시는 그런 사람을 만나도 순수한 마음으로 도움을 주지 못할 것 같았다.

청년이 내게 거짓말을 했다는 생각 때문에 불을 끄고 누워서도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게다가 우리 아이들에게 길거리에서 어려운 사람을 만나도 절대 도와주지 말라는 말밖에 할 수 없을 것 같아 마음은 더욱 무겁고 답답했다. 그런 낌새를 눈치챘는지 남편이 내게 물었다.

“당신 무슨 일이야?”

평소 남편은 쩨쩨하다 싶을 정도로 알뜰했다. 아무리 밖에서 늦는 일이 있더라도 외식 한 번 하는 법이 없다. 그런 남편이라는 것을 알기에 나는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에게 4만 원을 주었다는 말을 도저히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남편은 내게 집요하게 물었고 나는 할 수 없이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예상대로 남편은 “잊어 버려!”라고 하더니 자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다음날 아침, 남편은 일찍 출근했는지 집 안이 조용했다. 나는 출근 준비를 하다 화장대 위에 만 원짜리 지폐 몇 장이 놓여 있는 걸발견했다. 모두 4만 원이었다. 그리고 낯익은 글씨로 이렇게 씌어 있었다.

“여보, 난 그까짓 4만 원보다 그 일로 당신이 천사 같은 마음씨를 잃어버릴까 봐 더 안타까워. 자, 이 돈은 당신의 따스한 마음씨를 되찾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 청년을 대신해서 내가 갚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