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윤하의 `거침없는 도전

가수 윤하의 `거침없는 도전

하얀 손가락이 피아노 건반에 닿는 순간 19살 숙녀는 정열적인 아티스트가 된다.

“관객들에게 압도당하면 안되는데….” 좀처럼 긴장하지 않는 당찬 성격.하지만 무대에 서기 전엔 늘 이런 고민으로 머리 속이 복잡하다.

하루 3∼4시간씩 피아노 앞에 앉아 연습하고도 스스로에 만족하지 못하면 남몰래 울어 버리는 그녀다.

지난 3월 ‘고백하기 좋은 날’이란 앨범으로 국내 가요계에 데뷔한 윤하(본명 고윤하).’일본에서 활동하는 어린 가수’로만 알려졌던 윤하는 데뷔 2개월 만에 모 방송사의 가요순위 프로그램에서 1위에 올랐다.

전문가들에 의해 ‘상반기 최고신인’으로 선정될 정도로 음악성과 대중성을 인정받고 있다.

윤하는 과감한 도전정신으로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창조해 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여느 신인가수들과 다르다.

먼저 공연과 라이브로 평가받는 일본에서 데뷔한 뒤 한국으로 돌아온 이례적인 케이스다.

‘피아노 록’이라는 음악 분야를 창조적으로 개척한 것도 특이하다.

소속사인 스탐의 박상용 대표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열 배는 잘 하고 있다”면서 “깜찍한 외모의 소녀가 음악적으로 고민한 흔적을 평가해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 학교를 그만두다

IQ 153인 윤하는 공부 잘 하는 맏딸이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간직해온 가수의 꿈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져만 갔다.

중학교 2학년이 되자 부모님 몰래 오디션을 보기 시작했다.

스무번 넘게 떨어진 끝에 2003년 지금의 소속사 오디션에 붙었다.

노래나 피아노가 아닌 춤으로 합격했다. 윤하에게 이듬해 기회가 찾아왔다.

피아노를 치며 열창하는 모습이 담긴 CD를 본 일본 기획사가 러브콜을 보내온 것.

휴학하고 일본으로 가겠다는 얘기에 부모님은 펄쩍 뛰었다. 특히 아버지의 반대는 심했다.

“일본생활 초기엔 도쿄 시내 전광판에 제 얼굴이 나오는 상상도 했어요.

스타를 꿈꿨죠.하지만 시부야의 한 라이브 카페에서 관객 두 명 앞에서 공연을 하면서 내 목표가 스타여선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됐죠.내면의 것들을 음악으로 제대로 드러낼 수 있는 ‘표현자’로서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어요.” 2005년 발매된 윤하의 일본 정규 1집 앨범은 오리콘 차트 10위에 오르며 인기를 끌었다.

특히 강렬한 비트의 록에 피아노를 연주하며 열창하는 ‘피아노 록’이라는 음악은 일본 팬들에게도 신선한 충격을 줬다.

“처음엔 포크 발라드로 활동을 했어요. 그런데 녹음실에서 연습하면서 ‘피아노로 발라드 말고 다른 걸 할 수 없을까’ ‘밴드 사운드에 피아노를 접목하면 어떨까’ 뭐 이런 저런 시도를 하면다가 ‘피아노 록’을 하게 된 거죠.”

일본 생활이 익숙해지자 더 이상 휴학하면 곤란하다는 교장선생님의 전화가 걸려왔다.

윤하는 꿈을 위해 과감히 학교를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이후 검정고시를 틈틈이 준비했고 올해 한국외국어대학 일본어과에 입학했다.

“일본어로 생활하는 데 문제가 없지만 일본 문화와 고급 일본어를 배우고 싶었어요.

함께 어울려 사는 법도 더 배워야 하고요.

제 선택이었지만 고등학교를 그만 둔 뒤에도 대학에 가겠다는 생각까지 버리진 않았거든요.”


# 완벽주의자…”팬들과 토론하고 싶어요”

17살 나이에 홀로 일본에 건너가 한때 자취생활을 하기도 했던 윤하는 독한 면이 많다.

교복을 벗어던진 것도 그렇지만 스스로에게 엄격한 삶의 자세에선 나이답지 않은 어른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윤하는 남들보다 피아노를 월등히 잘 치면서도 오디션에선 피아노를 잘 친다고 얘기하지 않았다.

그녀를 지켜본 박상용 대표는 “스스로 생각하는 경지가 있는데 그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면 잘 하는 게 아니라고 느끼는 성격”이라며 “아주 심한 완벽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하도 이런 측면을 인정한다.

“잠을 자지 않고 연습하고 작곡하고 피아노를 쳐도 피곤하지 않을 때,주변에서 연습을 그만했으면 하고 말하는데도 더 하고 싶을 때 제가 독하고 깡이 있다고 느껴져요.”

연예인들의 고민거리인 악플에도 윤하는 의연한 편이다.

앤티팬이 거의 없지만 일부 네티즌은 윤하 기사에 악플을 달아놓기도 한다.

‘키가 짧다'(윤하의 키는 보아와 비슷하다고 함)는 리플을 예로 들면서 “부모님이 그렇게 낳아 주신 걸 어쩌겠어요”라고 웃어 넘긴다.

윤하가 정작 안타까움을 느낄 때는 팬들과 음악적으로 소통하는 데 한계를 느낄 때다.

“제 음악에 대해 나름의 논리를 갖추고 장문의 글을 올리시는 팬도 계시죠.저와 생각이 좀 다르신 건데 저렇게 보실 수도 있구나라고 느껴요.

만나서 오래도록 토론해보고도 싶지만 그럴 수 없잖아요.

2집도 있고,3집도 있으니까 제 음악을 앞으로 더 보여드리면서 이해의 폭을 넓혀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윤하는 앞으로 선보일 음악으로 관객과 더 소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 “꼭 살아 남으세요”

하루가 멀다하고 ‘반짝스타’가 명멸하는 가요계.윤하도 그 정글의 한 복판에 뛰어든 셈이다.

탄탄한 음악성이 없다면 잊혀지기 마련이고,잊혀지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성공을 의미하기도 한다.

얼마 전 인순이 선배를 우연히 마주친 윤하는 의미심장한 인사말을 들을 수 있었다.

존경해온 선배를 보자마자 자신의 CD를 들고 무작정 달려가 당돌하게 앞을 막았다.

“이번에 데뷔한 윤하입니다”라고 인사했더니 인순이는 “열심히 해서 꼭 살아남으세요”라고 답했다.

“선배님이 그러시는 거예요. 그 말이 너무 다양한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아서 늘 마음에 새기고 있어요. 항상 무대에서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일관된 파워를 느끼게 하는 선배님처럼 되고 싶거든요. 지칠 때나 힘들 때나 무대에 서면 관객을 압도하는 그런 모습 말이에요.”

가수의 꿈을 꾸기 시작한 게 10년 전쯤이라는 윤하에게 앞으로 10년 뒤를 물었다.

“제 나이에 느낄 수 있는 것들을 표현하고 싶어요. 지금 나이가 아니면 부를 수 없는 첫사랑 짝사랑 뭐 이런 것들이죠.10년 후요? 10년 뒤 한국과 일본,그리고 또 다른 나라에서 공연을 하면 팬들이 윤하 공연을 보면서 추억을 만들어 볼까.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표현자’가 됐으면 하고 꼭 그렇게 될 거예요.”

스스로 천재가 아니라고 말하는 윤하는 요즘 작곡 공부에도 많은 시간을 쏟아 붓는다. 300곡쯤 만들다 보면 좋은 1곡 정도는 건질 수 있을 것이라는 그녀의 말은 억척 그 자체다.


◆윤하는

1988년 4월 29일 출생
2003년 일본 현지 적응 시작
2004년 싱글앨범 ‘유비키리’로 일본 데뷔 , 휘경여고 1학년 중퇴
2005년 일본 정규1집앨범 ‘GO Younha’ 발매, 오리콘차트 10위
2007년 외국어대 일본어학과 입학, 한국 정규 1집 ‘고백하기 좋은 날’ 발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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