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박, 해일과 그 밖의 관측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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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우박에 대한 기록을 삼국사기를 토대로 살펴보면 우박을 박, 대박, 뇌박, 우박, 상박 등으로 구별하여 기술하고 있다. 그 중 가장 많은 것은 비와 같이 떨어진 우박이다. 우박의 크기를 밤, 계란 등에 비유했고 이것에 맞아 새가 죽었다는 등의 표현이 나와 있다. 고려시대의 우박에 대한 기록은 삼국시대 기록보다 그 크기나 피해상태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크기는 삼국시대에는 밤, 계란 등에 비유하는 정도였으나 고려시대에는 밤, 살구, 오얏, 매실, 새알, 배, 주먹, 탄환의 크기 등으로 비유하고 있다. 밤톨만한 우박에 까마귀, 까치가 맞아 죽은 일도 있었다. 오얏과 매실 크기의 우박, 살구 크기의 우박, 배 크기의 우박 등 과일 크기에 따라 비교하고 있다. 배만한 우박은 현재 상상도 어렵다. 과일 크기 외에 동물 알의 크기에도 비유하고 있는데 삼국사기에는 계란만한 것으로 나타내고 있으나 고려시대에는 고니 알만한 우박에 맞아 참새가 모두 죽었던 일도 있었다. 또 어떤 때는 주먹만한 우박이 왔고 이 우박으로 지붕기와 깨진 일도 있었다. 가장 큰 크기의 우박은 신우 원년에 있었던 것으로 탄환만한 크기라고 되어 있는데 이 탄환이 얼마나 큰 탄환인지는 막연하며 그 피해상황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크기는 언급이 없으나 그 상황으로 보아 매우 켰던 것은 충렬왕 27년(1301년) 5월 우박으로 이것에 맞은 고라니, 사슴, 새들이 모두 죽었으며 우박 하나를 여러 사람이 능히 들지 못한 것이 있었다. 조선시대 우박에 관한 기술 중 재미있는 것은 선조 29년(1596년) 남원 순창지방에 떨어진 큰 우박은 계란만 했는데 날던 새가 죽기도 하고 쥐구멍에 있던 쥐도 맞아 죽은 것이다. 또 순조 40년(1607년) 6월 충청도와 경상도에 떨어진 우박의 크기는 계란만 했는데 새와 짐승이 맞아 죽었고 초목도 죽었다. 인조 2년(1624년) 장단에서 평산지방에 걸친 대우박은 큰 것은 사발만 했고, 작은 것은 계란만 하여 매여 있던 우마가 많이 죽었다. 또 인조 4년(1626년) 정사, 평양, 강서 등지의 대우박은 사람얼굴만 했는데 코, 눈이 모두 구비되어 있었다. 인조 8년(1630년)의 것은 실로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조선시대 중 인조 때 가장 우박이 많이 내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재해-해일과 그 밖의 관측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서해안과 서해도서에 관한 기사 중에 조수의 간만에 대하여 언급한 것이 나타난다. 매조퇴(每潮退) 운운한 것으로 미루어 간만의 시각은 측정되어 알려져 있었을 것이다. 또 해일과 큰 파도에 관한 기사도 삼국사기를 비롯하여 여러 사료에서 찿아볼 수 있다. 삼국사기에는 699년 9월에 '동해에 물싸움이 일어났는데 그 소리가 수도에까지 들렸다'고 했다. (동해에서 경주까지는 약 12마일 거리다) 또 915년 6월에는 '참포의 물이 동해의 물과 서로 부딪쳐서 파도의 높이가 20여장에 달하고 3일 뒤에 그쳤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석의 이론은 한백겸(1550∼1613)에 의해 불완전한 것이나마 기술되었고, 이익의 성호사설에 이르러 대체로 정확하게 전개되었으며, 이규경의 조석변증설에서 완성되었다. 그의 논문은 정확한 관측에 입각한 것으로 특히 탁월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극광에 대해서는 중종 14년(1519년) 6월에 경상도 경주에서 관측한 극광에 관한 기록이 우리의 주목을 끈다. 이날 밤 경상도 경주부에는 천변이 일어났다. 이른 밤에는 달빛이 매우 밝았는데, 서쪽에 조금 구름기가 보였다고 생각될 때 구름 사이에 빛이 나타났다. 번개같기도 했는데 불은 일어나지 않았다. 흐르는 화살과 같은 모양을 하여 하늘을 천천히 움직일 때도 있는가 하면 유성과도 같이 삽시간에 지나가 버릴 때도 있고 혹은 붉은 뱀이 날뛰는 듯도 보이고 불꽃이 튀는 듯도 했다. 때로는 힘껏 잡아당긴 활의 현과도 같이 구부러질 때도 있고 또 가위와 같이 벌어질 때도 있어, 참으로 천변만화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 서쪽에서 천천히 동북방으로 향해서 움직이기 시작 하더니 밤 3시경에 사라졌다. 이것은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자세한 극광(極光)의 관측 기록일 것이다. 문헌비고에는 기원전 35년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200회 이상의 극광에 대한 관측기록이 보인다. 그것들은 푸르거나 붉은 구름으로, 혹은 안개, 붉은 뱀 같은 안개, 폭포 같은 흰 안개, 창과 칼들의 행렬 같은 흰 안개로 묘사되었고, 혹은 붉은 불꽃, 밤에 비치는 햇빛, 뱀 같은 화살, 백호, 누각 같은 청자색 구름 등으로 나타냈다. 백홍관일월(白虹貫日月)은 옛부터 매우 불길한 징조로 여겨졌기 때문에 주목되었다. 일월운과 백홍관일월의 관측은 그 색, 모양, 나타난 시각, 무리 속에 들어간 오성의 이름, 무리의 겹 등에 걸쳐 기록되었다. 그 중 일운과 백홍관일은 삼국, 신라시대에 6회, 고려에 99회, 조선에서 250회 합계 355회 관측되었고, 월운과 백홍관월은 고려에서 23회, 조선에서 46회, 합계 69회의 관측이 기록되었다. 명종실록에는 1551년 2월 13일에 있었던 일운에 대해서 운의 안쪽의 색깔과 시간에 따른 그 변화를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안개도 일찍부터 관측되었다. 삼국사기에는 기원전 34년 4월에 고구려에 있었던 안개에 관해서, '안개가 사방에 끼어 7일간이나 색을 분간할 수 없었다'고 기록했고, 또 서기 22년 2월에는 '갑자기 깊은 안개가 끼어 10일간이나 눈앞의 사람과 물건을 분별할 수 없었다'는 기록이 있다. Tags: hail 雨雹 우박 일기예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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