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선 – 다시 새긴 믿음

퇴근길, 지하철 역 입구 한 귀퉁이에 몸을 비스듬히 기댄 채 고통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청년을 보았다. 그냥 지나치려다가 그 청년의 모습이 너무 힘들어 보여 다가가 물었다.

“학생, 어디 아픈 데 있어요?”

“저…. 팔 한 쪽을 삔 것 같아요.”

청년은 고통스런 표정으로 한 쪽 팔을 움켜쥐고 있었다. 나는 얼른 병원엘 가지 왜 여기 있느냐고 물었다. 청년은 내 말을 듣고 잠시 머뭇거리다 딱한 사정을 털어놓았다. 지방에서 일자리를 얻기 위해 올라왔는데 일이 잘 되지 않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팔마저 다친 데다 붐비는 지하철에서 지갑마저 도난당했다고 했다.

나는 친구 말만 믿고 서울로 올라온 청년도 그렇지만, 시골 청년의 지갑마저 털어가는 서울 인심이 더욱 미웠다. 청년의 잔뜩 움츠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팠다. 무엇보다 그 청년에게 도움을 주어야겠다는 생각에 지갑을 열었다.

차비 하라며 1만 원을 주었다. 그러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밥도 굶었을것 같고 팔도 치료받아야 할 것 같아 3만 원을 더 꺼냈다. 청년은 몹시 죄송해하면서 연락처를 알려주면 내려가는 즉시 돈을 부치겠다고 말했다.

나는 돈보다도 청년의 자존심을 생각해서 전화번호를 일러주고, 조심해서 돌아가라고 당부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청년은 사흘이 지나도록 아무 연락이 없었다.

그 날 밤 나는 몹시 속이 상했다. 무엇보다 사람을 믿었던 내가 바보같았고 다시는 그런 사람을 만나도 순수한 마음으로 도움을 주지 못할 것 같았다.

청년이 내게 거짓말을 했다는 생각 때문에 불을 끄고 누워서도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게다가 우리 아이들에게 길거리에서 어려운 사람을 만나도 절대 도와주지 말라는 말밖에 할 수 없을 것 같아 마음은 더욱 무겁고 답답했다. 그런 낌새를 눈치챘는지 남편이 내게 물었다.

“당신 무슨 일이야?”

평소 남편은 쩨쩨하다 싶을 정도로 알뜰했다. 아무리 밖에서 늦는 일이 있더라도 외식 한 번 하는 법이 없다. 그런 남편이라는 것을 알기에 나는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에게 4만 원을 주었다는 말을 도저히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남편은 내게 집요하게 물었고 나는 할 수 없이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예상대로 남편은 “잊어 버려!”라고 하더니 자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다음날 아침, 남편은 일찍 출근했는지 집 안이 조용했다. 나는 출근 준비를 하다 화장대 위에 만 원짜리 지폐 몇 장이 놓여 있는 걸발견했다. 모두 4만 원이었다. 그리고 낯익은 글씨로 이렇게 씌어 있었다.

“여보, 난 그까짓 4만 원보다 그 일로 당신이 천사 같은 마음씨를 잃어버릴까 봐 더 안타까워. 자, 이 돈은 당신의 따스한 마음씨를 되찾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 청년을 대신해서 내가 갚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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